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쓰라-태프트 밀약 (문단 편집) == "러일 전쟁의 타당한 결과" == [[파일:6o6GO2z.jpg]] 1894년부터 1905년 사이 동아시아의 외교 정세 상황. 앞서 협정의 주요 내용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가쓰라의 주장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또 다시 다른 나라와 독자적으로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 일본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에 개입시켜 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한 '타당한 결과'로서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의 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한 길" 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태프트 역시 동의하였다. '''조선이 무분별하게 외세를 끌어들여서 강대국끼리의 충돌을 불러오고 전쟁을 부추김으로써 '평화'를 깨트린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먼저 일본과 미국은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으로 조선을 지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였다. 한반도에서 일본 쪽으로 기운 힘의 무게추를 반대쪽으로 움직이려는 대한제국의 노력은 일본의 이익에 반하며, 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 영국, 미국 간의 협력을 통한 각국의 이익 확대를 방해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패권을 저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 것이고,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protectorate)으로 만드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주장하고 미국이 동의한 "러일 전쟁의 타당한 결과"'''였다. 아울러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일본과 미국만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1906년, '러일 전쟁 종결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공로[* [[http://www.nobelprize.org/nobel_prizes/peace/laureates/1906/roosevelt-facts.html|출처]]]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당시로서나 현재로서나 국제 정세, 외교 등의 문제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